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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아카이브

90년대와 2020년대 디자이너 로고 변화 아카이브

by SSROOMING 2025. 7. 25.

브랜드의 로고는 단지 글자가 아니라, 시대의 기호이자 감각의 응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디자이너 브랜드의 로고는 상징 이상의 무게를 갖고 있으며, 단순히 이름을 나타내는 수준을 넘어 브랜드의 철학과 소비자와의 관계를 시각화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글에서는 ‘90년대와 2020년대 디자이너 로고 변화 아카이브’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시대별 감성의 차이를 브랜드 로고라는 렌즈로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단순한 비교를 넘어서, 로고의 구성 방식, 조형 원리, 철학적 방향까지 들여다보며 ‘왜 지금 로고들이 이렇게 바뀌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답을 찾아보겠습니다. 브랜드에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단순 로고 분석을 넘어서, 하나의 문화적 흐름을 꿰뚫는 통찰로 다가갈 수 있을 것입니다.

90년대와 2020년대 디자이너 브랜드 로고 변화 아카이브 대표 이미지
디자이너 브랜드 로고가 90년대의 복잡한 빈티지 스타일에서 2020년대의 미니멀한 모던 스타일로 변화한 모습을 보여주는 아카이브 비교 이미지

 

90년대 로고의 존재감

1990년대는 브랜드 로고가 그 자체로 ‘위치 표시’ 역할을 하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소비자들은 브랜드의 이름이 옷 위에 그대로 드러나 있기를 원했으며, 그걸 통해 소속감과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디올, 지방시, 베르사체 등 유럽 중심의 하이엔드 브랜드들은 당시 로고에 자신들의 클래식한 아이덴티티를 드러내면서도 최대한 시선을 끌 수 있는 방식으로 활용했으며, 한글 티셔츠에 ‘Dior’, ‘Chanel’을 새겨 입고 다니던 유행도 이 시기의 문화적 풍경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로고는 디자인보다 텍스트 중심의 ‘레이블’ 역할에 가까웠고, 이니셜을 앞세우거나 문장을 장식처럼 배치하여 직관적이고 선명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지금 보면 과감한 타이포그래피와 복잡한 문양들이 오히려 신선하게 다가오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곧 ‘럭셔리’의 상징으로 여겨졌습니다. 패션을 입는다는 건 곧 브랜드를 입는 것이며, 브랜드를 입는다는 건 곧 사회적 지위를 드러낸다는 의미로 작동했기 때문에 로고는 커다랗고, 선명하고, 때로는 공격적으로 보였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90년대 후반에 접어들며 점차 힙합 문화와도 결합하게 되며, 로고의 존재감은 패션 안에서 더욱 확대되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브랜드 간 경계는 뚜렷했고, 각자의 아이덴티티를 표출하는 데 있어 로고는 가장 직접적인 도구였습니다.

 

2020년대 로고의 절제미

2020년대의 디자이너 브랜드 로고는 이전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브랜드가 더 얇고 균형 잡힌 서체로 교체하면서, 시각적 과시보다는 절제된 존재감을 택하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생로랑은 Yves Saint Laurent라는 긴 이름을 간결하게 줄였고, 셀린느는 에디 슬리먼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부임하면서 ‘Céline’에서 e 위의 악상태귀를 제거해 ‘CELINE’으로 재정비했습니다. 이는 브랜드의 유럽 정체성을 벗어나, 더 글로벌하고 미니멀한 시각 언어로 전환하려는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리브랜딩이라기보다, 브랜드가 ‘소리치기’보다 ‘속삭이기’를 선택한 시대적 감각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특히 패션이 더 이상 외부를 향한 지위의 표현이 아니라, 자기 내면을 투사하는 도구로 기능하기 시작하면서 로고는 점점 눈에 띄지 않는 쪽으로 물러나고 있습니다. 이른바 ‘콰이엇 럭셔리’ 흐름 속에서, 로고는 더는 강한 도장을 찍기보다는, 옷의 텍스처와 실루엣 뒤로 살짝 물러난 채 그 자체로 말 없는 고급스러움을 전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 결과, 루이뷔통, 발렌시아가, 발렌티노 등 많은 하이엔드 브랜드들이 공통적으로 산세리프 서체와 블랙 앤 화이트 톤으로 로고를 정돈하면서, 마치 서로 닮은 듯한 ‘비슷함의 미학’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개성보다는 맥락 속의 정제된 흐름을 중시하는 시대의 요청이 로고에 고스란히 반영된 셈입니다.

 

로고의 탈개성화

많은 소비자들이 요즘 브랜드 로고를 보면 “다 비슷하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이는 단순히 타이포그래피의 유사성 때문이 아니라, 디지털 환경에서의 통일성과 글로벌 유통 구조의 효율성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90년대에는 로고 자체가 개성을 드러내는 수단이었지만, 2020년대에 들어서는 로고가 웹사이트, SNS, 디지털 광고 등 다양한 플랫폼에서 일관되게 노출되어야 하기 때문에 디자인의 ‘기능성’이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브랜드 로고는 이제 하나의 문화적 개성보다, 하나의 UI 요소처럼 다뤄지는 경향이 생기고 있으며, 디자이너 역시 개성을 덜어낸 로고를 통해 브랜드의 본질에 집중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브랜드의 이름은 더 이상 자신을 설명하기 위한 휘장이라기보다, 브랜드가 소비자와 소통하는 데이터 인터페이스처럼 작동하고 있으며, 이 변화는 패션 산업뿐만 아니라 시각 커뮤니케이션 전반의 흐름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로고가 눈에 띄지 않는 옷’이라는 개념은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들었지만, 오늘날에는 오히려 그 자체가 고급스러움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로고는 ‘보여주기’에서 ‘보여지지 않음’으로 이동했고, 그 변화의 원인은 기술, 미디어, 감성의 전환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 태도의 변화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로고의 변화가 단지 브랜드 내부의 결정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2020년대의 소비자들은 눈에 띄는 로고를 피하는 경향이 있으며, 오히려 브랜드를 알아채지 못하도록 디자인된 제품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른바 ‘로고리스 소비’는 단순히 미니멀리즘의 미학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조용히 드러내고자 하는 심리와 맞닿아 있습니다. 나는 이것이 패션이 ‘자기표현의 도구’라는 기존 개념에서, ‘자기 보호의 수단’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신호라고 해석합니다. 브랜드를 통해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되, 그것을 타인에게 과시하고 싶지는 않은 세대가 등장한 것이며, 이는 밀레니얼보다 더 내향적이고 개별적인 성향을 가진 Z세대의 소비 패턴과도 맞물립니다. 예전처럼 “어떤 브랜드를 입는가?”가 중요한 시대는 지나갔고, 이제는 “그 브랜드가 나와 얼마나 닮았는가?”가 핵심 질문이 되었습니다. 이 변화는 결국 로고에 대한 태도를 바꾸었고, 브랜드 역시 소비자의 내면적 요구에 발맞추기 위해 더 조용한 언어를 선택하게 된 것입니다.

 

브랜드 로고의 정체성 탐색

결국 로고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이 시대에 다시 제기되고 있다고 느낍니다. 단지 글자의 형태가 바뀌고, 색이 사라지고, 굵기가 얇아졌다는 변화를 넘어, 브랜드 로고는 지금 다시 ‘정체성’이라는 질문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로고 하나로 시대의 취향, 소비자의 심리, 디자이너의 철학까지 읽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로고는 단지 시각적 요소가 아니라 문화적 단위로 진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진화의 과정은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앞으로 브랜드들은 로고를 통해 얼마나 말을 줄일 수 있는지, 그리고 동시에 얼마나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는지를 두고 끊임없는 실험을 이어갈 것입니다. 나는 지금의 조용한 로고들이야말로 진짜 자기다움을 표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며, 그것이 오히려 더 많은 클릭을 부르는 시대가 되었다고 느낍니다. 우리가 로고를 통해 브랜드를 읽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의 태도를 로고로 판단하게 되는 지금, 패션에서 로고는 다시 철학의 언어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조용한 변화가 만들어낸 가장 큰 흔적

로고는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시대의 거울이었습니다. 90년대가 브랜드의 존재감을 로고로 외쳤다면, 2020년대는 그 존재를 속삭이는 방식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디자이너 브랜드의 로고 변화 아카이브를 따라가다 보면, 그저 디자인이 아닌 삶의 태도와 연결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이 조용한 진화는 어쩌면 패션이라는 언어가 시대를 이해하는 방식 중 가장 정제된 표현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입는 로고에는 우리가 원하는 세상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